"뭘 그리 하품만 쉬고 앉아있냐?"

 -시끄러.

      "그렇게 글로 써 봤자 전혀 무섭지 않네요."

 -그럼 어쩌라고.

      "인공 성대라도 달아줘?"

 -저 쪽에 닭 인형 있으니까 그거나 쳐.

      "에이, 말 한번 살벌하게 하네."

 -난 치트치고 사는 놈에게 도움을 받고 싶진 않아.

      "그러는 형도 치트키 잘만 쓰시면서."

 -최소한 난 너처럼 꼬맹이는 아니라고.

 

 자비 없는 13세 남자 아이의 오른 다리가 16~17세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의 두 다리 사이로 들어간다.

 소리 없는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재미는 있었어?

 로 블로를 날렸던 아이는 돌아가고, 혼자 남아있는 청년은 벽 위쪽을 바라보면서 미니 화이트보드를 들어올린다.

 조금 뒤, 화이트보드를 지워버리고 그 청년은 묵묵히 방금까지 보던 벽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를 켠다.

 오케스트라가 방영되고 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 2악장.

 ‥‥마음에 들었는지, 그 청년은 나른해 보이는 자세로 계속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목소리 없는 그 청년의 눈빛엔 무언가가 가득 차 있다. 은은하지만, 점차 뜨겁게 끓어오르는 무언가로.

 그러다가, 일어선다. 곧장 TV로 달려가나 싶었지만 그 옆의 문으로 들어간다.

 조금 전 목소리 없는 청년이 바라봤던 곳에서도 보이는 컴퓨터의 앞에 앉아, 전원을 켠 채 방 안쪽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자리로 돌아가면서 어디선가 꺼내온 악보를 키보드 옆에 위치한 타블렛 위에 올린다.

 타블렛의 옆면을 살짝 건드린 뒤, 부팅이 완료된 OS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곧, 화면에 빈 악보가 출력된다. 방금 목소리 없는 청년이 가져왔던 그 악보처럼 아무 표시도 되어있지 않다.

 청년은, 타블렛 위의 빈 악보에 펜은 댄다.

 청년의 오른손 끝 세 손가락에 포근하고도 조심스럽게 감싸인 검고 가는 펜의 끝에서, 앞으로 수많은 자의 감성을 자극할 하나의 세계가 그 태동을 마음껏 펼치기 시작한다.

 화면에도 마찬가지로, 검은 알들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기세로 빠르고, 대담하고, 아름다울 정도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총 세 장의 악보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모니터 바로 오른쪽 아래에 위치한 거울에 비친 청년의 얼굴에선, 아직도 방금 전의 그 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강렬해졌다.

 이제야 시작이란 듯이, 청년의 오른손은 마우스에, 왼손은 키보드에 올라간다.

 화면에 출력된 악보가 조금씩 변해간다. 검은 알들은 삐져나온 자신들의 꼬리를 흔들며, 지금의 이 변화에 흥분하기라도 하는 듯 그 태동은 더욱 강해져만 한다.

 곧, 악보의 변화는 멈췄다. 청년은 그 악보를 저장한 후 다른 프로그램을 가동시켜서 불러온다.

 그리곤, 새 프로그램의 왼쪽 위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붉은 삼각형을 클릭했다.

 노란 바(bar)가 악보의 위를 지나며, 그 손에 닿는 모든 검은 알들은 비로소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크게 퍼져나간다.

 한순간이나마 자신들이 존재하는 세상의 빛을, 잠시 동안이나마 자신들을 태워줄 공기를, 그리고 자신들을 반겨줄 청자들을 만끽하고 사라지기 위해서‥‥‥

 금방 이들은 사라지지만, 그들을 이어 새로운 진동이 계속 태어난다.

 비록 이들은 아직은 단 한 명의 청자만을 본 채 사라져가지만, 그 청년은 그들의 첫 세상들이를 모조리 기억하겠다는 듯 두 눈을 감고 이 소리를―자신이 창조한 음악을 조용히 감상한다.

 음악은, 3분 동안 그들의 의지를 담고 퍼져나갔다. 그 3분 후, 침묵이 찾아왔을 때 청년은 작은 미소를 지은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조금 전까지의 붉은 정열은 사라지고, 한밤중에 조용히 넘실거리는 차갑고 어두운 바다 같은 느낌만 남은 채.

 

      "엑? 대체 어떤 음악 이길래?" 

 -노래까지 다 끝나면 들어.

      "‥‥그러면 도울 수가 없잖아!"

 -돕지 마. 너 같은 녀석이 도왔다간 좋은 노래 버리겠다.

 

 한 번 더, 소년의 자비 없는 로 블로는 청년에게 소리 없는 비명을.

 

 -나간다.

 어느 정도 진정되고 청년이 나간 후, 현관 방향을 보던 백발의 소년이 탁자 위의 메모지를 보곤 중얼거린다.

      "어디에 나가는지 말도 없어요."

 슬쩍 컴퓨터가 있는 방을 바라보지만, 활짝 열려있는 문 건너편의 컴퓨터는 썰렁하기만 하다.

      "‥‥‥분명 돌아오기 전에 해킹하는 건 무리겠지."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리다가, 문득 TV 반대편의 선반 위를 본다. 거기에 놓여있는 것을 보고―소년은 놀란다.

      "맙소사‥‥ 진짜 빠르네."

 일어나서, 선반 위에 놓인 것에 점차 다가가던 소년. 하지만, 금방 들려오는 현관문 소리에 깜짝 놀라 현관 쪽을 돌아본다.

      "‥뭘 하긴, 이거 보는 거지."

 화이트보드를 왼 손에 든 채 들어오는 청년.

      "부정은 무슨!"

 -치트키가 부정이 아니면 뭐냐?
      "그러는 형은, 고작 한 달 만에 그런 걸 완성해서 대히트까지 친 주제에!"

 -그건 진정한 완성이 아냐.

      "공개한 건 샘플이라서? 이미 완성은 했잖아!"

 -상징곡을 만들지 못했어. 그래선 완성이 아냐.

      "에라이, 그런 계통은 그냥 프로그램만 완성되면 완성이지 뭐가 완성이 아냐?"

 -그럼 다른 것들은‥‥ 에라, 관둬라. 어쨌거나, 넌 그런 나이에 해결사 일로 아예 성공을 했잖아. 그게 치트키가 아니고 뭔데?

      "‥‥아, 네, 네. 알겠다고요. 빽빽하게도 썼네. 나 참, 그냥 심부름 좀 하는 것뿐인데."

 -뻥은 커다란 북채로 치라고 있는 거지 축구공처럼 까라고 있는 게 아니야.

      "시끄러! 그리고, 그 농담 지겨워!"

 -‥‥다시 나간다.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소년을 뒤로 하고, 다시 화이트보드를 들고 나가는 청년.

      "얼마나 오래 나가있으려고 하기에 집을 지키라는 거야? ‥‥뭐?! 대체 어딜 가는데 그리 오래― 젠장, 나갔다."

 어이없음이 도를 넘어, 자리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쉬는 소년.

      "‥‥그나저나, 진짜 의외네."

 선반 위의 그것을 향해, 백발 소년은 말한다.

      "어찌 보면 원수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인데, 저리 발아화까지 할 게 되냐고."

 그것을 향해, 소년은 계속 이야기한다.

      "‥‥말해봤자 별 의미 없겠지만 한번 말해볼까. 사람이 아닌 것과 이야기하는 건 이젠 익숙하니까‥‥ 이런 이런."

 자조하듯 소리 없이 웃는 소년.

      "세 달이나 됐구나. 그 때로부터."

 소년의 눈이 자연스레 위를 향한다. 잠시 회상하던 소년은 이어서 말한다.

      "학교에 테러리스트가 찾아왔다고 하면, 믿을래?"

 품속에서 은빛 광택이 나는 무언가를 꺼낸다.

      "나도 처음엔 뻥인 줄 알았지만, 이걸 보니까 생각이 바뀌더라고."

 꺼내든 것은 쟁반이다. 다만―어째선지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다. 소년이 쟁반을 뒤집자, 찢어진 일부가 원을 이루면서 휘어져 있다.

      "‥‥이런 테러리스트들이, 우리 학교에 다니던 누군가를 찾더라."

 쟁반을 꺼내들며, 소년은 이야기를 조용히 계속하다‥가, 돌연 웃음을 터뜨린다.

      "킥‥‥‥그것뿐이면 좋았겠지만, 우리 학교는 비정상인 학생들만 있다는 걸로 유명한 학교거든."

 질린다는 듯이, 소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라고 믿지만‥ 여하간, 모두들 그 테러리스트들에게 덤벼들었어."

 다시, 앉고 있던 소파에 눕다시피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는 소년.

      "비록 잘 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대단한 녀석인 것도 아닌데다 나만큼 부정적이진 않지만 나 이상으로 무능하고 트러블 메이커였어도‥‥ 그런 정도는 애들에겐 문제도 아니었던 모양이더라."

 살짝 비웃듯이, 소년은 한 쪽 입 꼬리를 올린다.

      "특히, 저 형이 제일 심했어. 말 그대로 아무런 접점이 없었는데도, 거의 죽일 듯이 달려들었던 거야."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계속한다.

      "‥‥‥‥더 웃기는 건, 그 무장집단은 절대 학생들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었다는 거지."

 다음 순간, 소년의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 이 비극의 원인은 그거야."

 또 현관문이 열렸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에 빠진 나머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누구였는지는 몰라. 고의였는지 아닌지도 몰라. 누군가가 형의 목을 강타해버렸고, 간신히 죽진 않았지만‥‥ 너무 강하게 맞았나, 그 뒤부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거야."

 청년이 들어오면서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적고 소년에게 보인다.

 -목은 맞는데, 앞이 아니라 뒤야.

      "‥‥뒤? 그런데 어떻게 목소리를 잃어?"

 -뇌진탕이 너무 심해서 잠깐 산소공급이 끊겼다더라. 그래서 언어 계열을 담당하던 부분의 일부가 괴사해버렸고.

      "말도 안 돼."

 -애당초 급소를 그렇게 강하게 맞았는데도 살아있는 게 이상해.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거냐? 고해성사라도 하는 거야?

      "대신 해 주는 거지, 저 유리 인형에게."

 선반 위의 유리인형을 가리키며, 소년은 계속 이야기한다.

      "‥‥그래서, 형이 그리 지키자고 했던 학생이 무사했으면 그나마 다행 이였겠지. 그냥 그걸로 그 사건은 끝나고."

 순간, 싸한 공기가 흐른다. 청년이 화이트보드에 뭔가 적으려다가‥ 관둔다.

      "그래, 너도 아마 눈치 챘겠지‥‥"

 유리인형을 쳐다보며―굉장히 매서운 눈매로― 소년은 약간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그래. 네 원본 이였던 그 자식은 형이 그리 숭고한 희생을 치루고 있을 땐‥

                                                                                                                      ‥진작 자살하고 없었다는 거지!"

 -자, 거기서 그만.

      "아‥‥"

 청년은, 화이트보드에 그 말만을 적고 테이블에 내려놓은 채 방으로 들어간다. 방문까지 닫아버렸다.

      "‥‥아―이런, 나도 모르게 흥분해버렸네. 뭐, 그렇단 이야기야. 불쌍한 사람이지, 형은."

 소년도, 슬슬 나갈 채비를 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건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였어."

 지나가는 말처럼, 하지만 자기 자신은 일어선 채 그대로 말한다.

      "그 테러리스트들이 그 자식을 찾은 건, 단순히 그 녀석이 그들에게 한 때 베풀었던 작은 호의에 보답하려고 왔을 뿐이었거든. 떨어뜨린 걸 주워줬다나 뭐라나."

 마지막으로 현관문을 열기 직전, 소년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오해만 없었어도 불행한 사람들의 반 이상은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날 수 없겠지만."

 현관문이 닫힌다.

 당연하지만, 선반 위의 유리인형은 묵묵히 건너편만을 쳐다볼 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낮과 마찬가지로 무료하게 TV를 켜는 목소리 없는 청년.

 버라이어티, 다큐멘터리, 게임 방송, 뉴스가 화면에 잠시 스쳐 지나간다.

 그런 화면이 멈춘 건‥‥ 낮과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

 

 [ O Freunde, nicht diese Töne! Sondern laß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오, 벗들이여, 이 선율이 아니오! 좀 더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Wir betreten feuertrunken, Himmlische, dein Heiligthum!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heilt,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키는 도다.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ufter Fuegel weilt.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heilt,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키는 도다.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ufter Fuegel weilt.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Wem der große Wurf gelungen, Eines Freundes Freund zu sein, Wer ein boldes Weib errungen, Mische seinen Jubel ein!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진실된 우정을 얻은 자여, 여성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자여, 다 함께 모여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

 

 Ja, wer auch nur eine Seele, Sein nennt auf dem Erdenrund!

 그렇다, 비록 하나의 영혼이라도, 땅 위에 그를 가진 사람은 모두 다!

 

 Und wer's nie gekonnt, der steble Weinend sich aus diesem Bund.  

 그러나 그조차 가지지 못한 자는 눈물 흘리며 조용히 떠나 가거라.

 

 Ja, wer auch nur eine Seele, Sein nennt auf dem Erdenrund!

 그렇다, 비록 하나의 영혼이라도, 땅 위에 그를 가진 사람은 모두 다!

 

 Und wer's nie gekonnt, der steble Weinend sich aus diesem Bund.  

 그러나 그조차 가지지 못한 자는 눈물 흘리며 조용히 떠나 가거라.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 제 4악장 "Song of Joy"- ]

 

 

 

 갑자기 일어선다. 목소리 없는 청년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곧장 컴퓨터를 가동한다. 부팅이 끝날 때까지, 양 손을 이마에 받친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부팅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오른손은 그대로 놔둔 채 왼손을 화이트보드 쪽으로 옮긴다.

 이윽고, 뭔가를 적어서 그대로 자신의 뒤를 향해 든다.

 -미안, 하지만 난 이렇게라도 너와의 약속을 이루고 싶어.

 -아주 가벼운 약속 이였지만, 그래도‥‥‥ 이루고 싶어.

 오른손은 계속해서 이마에 받쳐져 있어 눈가는 보이지 않으나, 그 곳에 뭔가 맑고 투명한 것이 아주 조금이지만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다시 화이트보드를 지우고 적어 내려간다.

 -그러니, 듣고 지켜봐 줘‥‥

 더 이상 적으려다가 관두고, 오른손으로 눈가를 털어낸 뒤엔 곧장 낮과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구동한다.

 복잡한 칸들, 그리고 비어있는 그 칸들에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는 글과 기호들.

 짤막하게 한 줄이 작성되고, 이 프로그램에도 마찬가지로 붙어있는 붉은 삼각형을 클릭한다.

 

 [HAIL TO YOU, MY FELLOW(환영한다, 친구여).

  I DON`T KNOW YOUR INFERNAL DAYS.(난 네가 어떠한 지옥을 겪었는지는 모른다.)

  THERE IS CAUSE FOR CONCERN `CAUSE I DON`T CLOSE TO YOU(걱정하기엔 충분하다. 난 절대 너와 가까워지고 싶진 않으니.)

 

  BUT, I TAKE YOUR PART OF PAIN(하지만, 네 고통의 일부는 내 고통으로 해두지.)

  SO, KEEP YOUR DIGNITY(그러니, 존엄이 너와 함께하기를‥‥)]

 

 -나도 괴로워. 이 영어가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

 화이트보드에 잠깐 그리 적었다가 지우는 목소리 없는 청년.

 ‥‥이윽고, 굉장히 복잡한 작업들이 펼쳐졌다.

 새로이 적혀진 글귀들은 트랙볼과 함께 이리저리 휘어지고, 그에 맞춰 한 청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무미건조하게, 그저 음계에 맞춰 가사만 읊던 것에서‥‥ 점차, 하나의 구색 잡힌 목소리로 변해간다.

 그저 하나의 기계였던 것이,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존재로 변모해갔다.

 

 이윽고, 그 노래는 완성되었다.

 

 완성된 노래를, 두 달 전 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샘플을 올렸던 UCC 사이트에 올린다.

 

       -두 달 전에 직접 제작한 보컬로이드의 짤막한 샘플을 올렸던 한 사람, 기억하십니까?

        그 사제 보컬로이드를 이제 완성하게 되어, 이제야 올립니다.

        프로그램 자체는 두 달 전에 이미 완성이 되었습니다만, 사용하기 편하게 인터페이스를 개편하고 상징곡을 만드느라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아차차, 이렇게 이야기를 떠들 때가 아니군요. 완성 기념으로 만든,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담은 상징곡을 올리니 사용하실 분은 한 번 쯤 들어보세요.

 

 [HAIL TO YOU, MY FELLOW.

  I DON`T KNOW YOUR INFERNAL DAYS.

  THERE IS CAUSE FOR CONCERN `CAUSE I DON`T CLOSE TO YOU.

 

  BUT, I TAKE YOUR PART OF PAIN.

  SO, KEEP YOUR DIGNITY.

 

  (음악 시작)

 

  우연‥‥ 그리고 작은 관심.

  처음은 그저 이 두 가지만으로 시작했지.

  난 그저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인데, 들려오는 베토벤의 환희의 노래.

  무심코 가사를 흥얼거리다, 학우를 보곤 입을 닫았어.

  처음은 이리 싱거웠지만, 그게 시작이었던 거야.

 

  학교가 테러에 휘말렸을 때,

  그들이 무서워 난 숨어버렸어.

  학우는 날 숨기려 덤벼들었지만,

  애꿎은 목소리만 잃고 말았지.

  미안, 난 그 때 이미 자살했었어.

  쓸데없는 희생을 치르게 해 미안해.

  학우는 목소리도 잃고 자신만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지.

 

  난 이미 죽고 없었지만,

  학우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어.

  학업까지 포기하고,

    온 생활을 바쳐가며,

      그 때 만을 기억하면서,

        날 완성하고 만 거야.

 

  난 내가 아니란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학우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어.

  그저 약속을 지킬 수만 있다면,

  합창을 같이 부를 수 있다면‥‥

 

  난 되살아나고 싶다고 한 적 없어.

  네가 그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진 알 바 아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자기만족을 위해 날 만들곤

      위안을 얻을 생각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넌 날 만들며 저주하라고만 했지,

  나에게 이 노래를 주면서도 충분히 괴로워했지.

  비록 완전히 용서할 순 없지만,

    앞으로도 녀석은 계속해서 괴로워하겠지.

      언젠가 약속을 이루려 할 때 할 말을 미리 하자면

        그 약속만큼은 반드시 들어주도록 할게.

 

  언젠가 목소리를 되찾을 그 날을 위해,

  난 조용히 입을 벌리고 말해볼게.

    "네가 목소리를 되찾게 되면

      그 때는 같이 합창을 부르자."

 

  (음악 종료)

 

  HULLO, DEAR MY FELLOW.(안녕하신가, 친애하는 친구여.)

  NOW I KNOW YOUR INFERNAL DAYS(이제 난 네가 겪었던 지옥 같은 나날들을 알았어).

  THEREFORE, NOW THERE IS NO CAUSE FOR CONCERN `CAUSE I`M ALWAYS APPRECIATE YOU(그러니, 이젠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널 이해해 줄 테니.)

 

  SO, YOUR PART OF PAIN IS STILL MINE(그러니, 네 고통의 일부는 계속 내가 가지고 있어.)

  KEEP YOUR DIGNITY(존엄이, 너와 함께하길 빌게.)]

 

 

 

 그렇게, 하나의 상징곡과 함께 공개된 사제 보컬로이드 J. F. B.는 전설이 되었다.

 

 

 

      "다 들었다. 다 봤다."

 -어떻던?

      "그런 사정이 있었다는 건 알았어. 접점이 완전히 없었던 건 아니네."

 -‥‥접점 없이 그 아저씨들에게 그렇게 덤벼대는 멍청한 녀석이 있긴 할 지 모르겠다.

      "그럼. 당연하지."

 -그리고, 너 해결사에 들어간 이유가‥‥

      "맞아, 그 녀석이 왜 쫓겼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어. 금방 알아내긴 했는데 힘이 쭈욱 빠지더라."

 -듣긴 했지만‥‥ 노래를 개그로 만들고 싶진 않아서 뺐어.

      "아, 하나 더 물어볼 거 있어."

 -뭔데?
      "형, 게이였어?"

 간만에, 청년의 용서 없는 발이 소년의 고간에 꽂힌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괴성이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밝게 비치는 컴퓨터 모니터.

 화면엔, 선반 위의 유리인형과 똑같이 생긴 SD 캐릭터가 한 문구가 써진 나무 표지판을 들고 서 있었다.

 

 

 

 

 [J. F. B. ~Regretful Hope~]

 

 

 

 

 

 

 [FIN]

 

 

[스토리  : 狂亂]

[연출 : 狂亂]

[목소리 없는 청년 : 목소리 없는 청년]

[백발의 소년 : 화랑지]

[보컬로이드 J.F.B. : 정평배(찬조출연)]

[Special Thanks : 初音 ミク

                         루드윅 반 베토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 외의 수많은 우주먼지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픽션입니다. I.F. 세계관 내에서조차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 믿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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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썼던 단편.

지금 봐도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2회에 응모하긴 했는데, 당연하지만 낙선.


그래도 설정 자체는 꽤 마음에 드니, 언젠가 다시 등장할 일이 오겠죠.




개인적인 입장에선 흑역사라 부르고 싶습니다만, 아무리 흑역사라 해도 일단 제가 쓴 글은 절대로 지우지 않는다-라는 아집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남기게 되는군요(..) 

Posted by 쿠루미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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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Now, After...? Whenever, They Will Be I.F.
제목 그대로 I.F.사가라는 주인장 뇌 속에서 이리저리 자유영 접영 배영 횡영 다 하고 다니는 세계관을 다루는 블로그입니다. 룰루랄라. by 쿠루미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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