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ВΓΣ새빍쑭эDEπ入閃―
데, DeΔεで得‥‥‥.
―언어계통 인터페이스 설치 완료. 총 84개 언어 사용가능.
[좋았어, 그럼 미친 놈이 무슨 뜻인지 말해봐.]
―1.정신 이상의 남자를 욕하는 말. 2. 언행이 실없는 남자. 3. 너.
[그럼 이번엔 욕. 미친 놈에 나온 욕 말야.]
―'욕설'의 준말. 남을 저주하거나 욕되게 하는 말. 여기서의 '욕'은 명예스럽지 못한 말. 대표적인 예로는 네가 지금 하는 모든 말을 들 수 있겠지.
[1단계 통과‥‥‥ 좋아, 이번엔 R===를 번역해봐.]
―口口.
[캬~ 이리 들으니 감회가 정말 새롭구만. 아직 인격이 구성되지 않았으니 미안해할 필요따윈 없겠지?]
필요 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컨스트럭션 시스템 레디. 자동 체크 돌입.
신체 제어 소프트웨어‥‥OK. 감각 하드웨어&소프트웨어‥‥OK. 시냅스 루틴‥‥NG.
시냅스 루틴이 인스톨되지 않음=설치 요망. 다른 말 하지 말고 닥치고 깔아달라고.
[안 깔아, 임마. 이거 덥석 물고 정신이나 차려!]
0101101110001010010111111001011110110101011101010111010000101101010010111010110001‥‥
―FIMS-1 인격 생성 프로그램 가동.
가동까지 앞으로 3초.
2초.
[자, 그럼 네 이름은?]
1초.
[왜 대답이 없어, 임마!]
"정신을 차려야 대답을 하건 말건 하지! 그리고 난 임마가 아니라 그라스야!"
아니, 잠깐만. 마지막 말은 저게 아니였는데?
‥‥‥천장이 막 눈을 뜬 날 반긴다.
몇 번이고 떼도 떼도 다시 붙어있는 포스터가 보인다. 항상 다시 붙이는 주제에 돈이 뭐 그리 쓸데없이 많은지, 항상 천장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내용은 달라진다.
오늘의 포스터는, 지금 내가 서 있는 땅이 소속된 국가가 옛날에 벌였던 어떤 켐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명한 포스팅이였다.
분명 이곳의 쥐가 인간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니까 쉽게 건드려선 안 될 존재라는 걸 알고 있을텐데‥‥
굳이 붙인 걸 보면 뭔가 심오한 뜻이 있긴 하겠네.
"근데 그런 프로파간다는 짜증나니까 이젠 제발 그만 좀 해라."
오른팔의 관절에 걸린 락을 자연스럽게 풀면서, 주변 수증기에서 이온을 살짝 뽑아낸다.
그 녀석이 날 만들 때 사용했다는 `Freece`s Frick Technology`인지 뭔지 하는 미스틱 테크놀로지―이런 말을 하긴 뭣하지만, 나조차도 이 테크놀로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주 간단해야 할 기술조차도 어느 것 하나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이렇게 아주 살짝 뽑아낸 이온을 토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의 효능을 낼 수 있도록 증폭시켜준다.
"여기서 문제 하나. 지금 당신에게 쏘려고 하는, 이온을 쏴제끼는 공격기라면 대체 뭘까요?"
그냥 날려버리긴 심심했기에 대화하는 형식으로 한번 중얼거려본다.
"정답은 당연히‥‥ 하전입자포 되시겠습니다!"
아주 약하게 쐈지만, 그 정도로도 포스터는 순식간에 전소.
이 자식들, 내가 이리 쏠 줄 알았구만‥‥ 그런데 어째서 이런 쪽에서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건데?
더 이상 시간을 끌 일도 없고 해서, 곧장 일어나고 아침을 먹었다.
오늘 아침은 좀 따뜻한 걸 먹고 싶다‥‥란 생각에 레토르트 사골곰국을 뜯어서 데우고 있는 중이다. 남은 건 점심이나 저녁 때 먹으면 되겠지.
뚝딱 데우고 식탁에 가져간다. 잘게 썬 파와 소금, 후추도 같이 가져간다.
둘 다 조금씩 치고‥‥ 아차, 사리.
냉장고에 랩 씌운 채 보관해놨던 라면사리를 꺼낸다. 단번에 면발은 새하얀 연못에 풍덩.
조금씩 국물 맛을 보면서 간을 좀 더 맞춘다. 오케이, 이거면 됐어.
거실 식탁에서 면발을 들이켜면서 TV를 켜본다. 시사 채널. [오- 삑!]
시사 따위, 알 게 뭐냐. 돌린 채널에선 어떤 애니메이션이 방송중이다.
[티-셔츠잖아요! 헬멧 안 썼잖아요! 술배 나왔잖아요!]
어떤 괴수가 도저히 히어로답지 않게 보이는 3인방에게 태클을 걸고 있다. 아, 이거 예전에 재미있게 봤었던 악한 선 VS 선한 사이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네. 2기 재방송인가 본데‥‥ 어차피 봤잖아. 넘겨.
면발을 입에 물면서 채널을 돌린다.
[꾹양~꾹양~꾹양~양~꾹! (사발컵도 있어요)]
풉.
"XX! 저 자식들이 저기엔 왜 나와?!"
순간 날아간―간신히 냄비 안에 들어가 세이프― 면발을 다시 젓가락으로 집으면서 괜히 외쳐본다.
"이드, 무명! 너희들 대체 뭣 때문에 그런 테러물을 찍은 거야?!"
맙소사, 프릭츠 그 자식은 뭘 하기에 저 녀석들이 CF 찍는 걸 그대로 놔뒀냐?! 단속 하나 못 해?!
‥‥라고 생각하다가 기억해낸다. 참, 저 녀석들 이제 없지. 저 광고도 옛날 광고고.
그래도 저 광고 진짜 오랫동안 쓰인다‥‥‥라고 생각했다가 또 기억났다. 레이븐의 여파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잖아. 그렇다면 이런 시간축의 흔들림도 전혀 이상할 거 없지.
하지만‥‥‥ 버리긴 아깝더라도 이걸로 몇 주 동안 양꾹라면 먹긴 글렀다. 한 박스 사 놨는데.
시원하게 물 내리는 소리.
한 달에 한 번 정도 체네에 지나치게 쌓인 불필요한 에너지들을 배출해야 하는데, 하필 그 방법이 화장실이다.
하전입자포를 원할 때마다―물론 몇 가지 전제는 필요하지만― 발사할 수 있을 정도의 미스틱 테크놀로지인 주제에, 왜 하필 이런 쓸데없는 기능까지 달았냐고 물어봤을 땐 녀석의 답이 참 걸작이였지.
[재미있잖아. 너도 한 번 여성의 기분을 느껴보라고!]
‥‥‥개XX, XX놈. 지금 생각해봐도 끝내주게 열 받는다. 어째서 남성이라고 말했는데도 굳이 이런 기능을 달아버린 건가 따져본 적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저 말에 추가로 한 마디 더 붙였었다.
[그럼 한 달에 한 번 인커밍이라도 해 볼려?]
그 말에 당장 입 다물었지만. 차라리 이 쪽이 훨씬 낫지.
그래도, 평범한 전산인형에다가 왜 이딴 기능을 달아놓냐고. 덕분에 전혀 필요없는 일을 매번 해야 하‥‥
아차차, 늦겠다.
다용도실‥‥ 아마 여기가 아파트였다면 다용도실이란 이름이 붙어있었겠지. 실제론 아니긴 한데, 그냥 창고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
여하간, 이 안에서 난 어떤 기계 앞에 서 있었다.
커다란 캡슐 비슷하게 생긴 이 기계는 현재 표면이 형형색색 현란하게 바뀌면서 요동치고 있다. 안정화 중이다.
캡슐 외벽에 걸려있는 밋밋한 헬멧을 쓴다. 안전장치들을 다 고정할 즈음에, 캡슐이 절로 열린다. 작업이 끝난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간다. 알아서 캡슐이 닫힌다. 복잡한 코드들에서 붉고 푸른 빛이 뿜어져나오고―
헬멧을 캡슐 외벽에 다시 건다. 캡슐은 막 가동이 끝나고 연기를 내뿜으며 덜덜 떨리고 있다.
그 녀석의 악질적인 취미다. 실제로는 전혀 문제가 없건만 일부러 이런 연출을 하게 만든다. 이유야‥‥‥ 이젠 너무 뻔해서 말하기도 싫다.
한번 직접 고쳐볼까도 생각했지만‥‥ 빌어먹을 맛 간 테크놀로지.
‥‥‥주변을 둘러본다. 혹시나 잘못 오진 않았는가 해서. 아무래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걸 믿기는 좀 곤란해서 말이지.
일반인이‥‥ 아니더라도 해도 이 쪽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 중 거의 100%는 형태 자체를 인식하지 못 할 정도로 복잡한 기계들로 꽉 찬 방이다. 웬만한 강당 정도의 넓이다.
"그라스, 출근."
'둥-' '위잉―'
불이 켜지고, 이 방 안의 모든 시설이 동시에 가동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 방이 생명을 되찾는 광경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하나하나 내가 일궈낸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게 그 이유겠지.
‥‥‥그래도 프릭츠가 여길 본다면 웃어제끼겠지만. 어째 슬퍼지긴 해도, 녀석의 연구시설은 취미 삼아 자기 재산의 1%도 쓰지 않고 만들었다고 하니까 비교하는 의미가 없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오늘 일정은?"
[F-터미널 위키시스템 제작 의뢰 ‥‥ 이상 1건]
오, 위키라고?
주머니에서 터미널을 꺼냈다. 원판형 몸체에 왼손으로 잡았을 때 각 손가락에 딱 들어맞는 버튼들과 네모난 화면이 날 반긴다.
F-터미널이라 불리는 휴대용 단말기의 프로토타입이다. 인공인격은 탑재되어 있지 않으나, 기능만으로 따지면 오히려 더 좋아서 극난 흥신소의 멤버들은 오히려 이 쪽을 더 선호한다. 나도 그 점에선 별반 다르지 않아 이 쪽을 쓰곤 있지만, 정작 이 단말기 자체를 쓰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게 옥의 티려나.
여기다가 위키 시스템을 넣는단 말이지‥‥‥ 나이스 아이디어. 당장 작업 들어가자.
메인 컴퓨터의 앞에 앉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키보드 4개가 튀어나온다.
다른 시설들은 첨단의 극을 달리지만, 이 메인 컴퓨터만큼은 구식 키보드를 이용한다. 하도 오랫동안 쓰다 보니 익숙해졌기 때문‥‥일 리는 없고, 내 구조상 뇌파 스캔을 쓸 수 없어서 그렇다. 남들은 다 쓰는데 난 못 쓴다는 사실에 약간은 서글퍼하면서 키보드를 또닥거린다.
일단은 위키 시스템이 어떤 게 있는지부터 찾아보자.
별 일 없이 일한 지 4시간 경과.
'삐- 삐- 삐-'
F-터미널의 호출음이다. 세 번 울리고 땡이면 누군가가 F-터미널에 숨겨둔 그 기능으로 연락했다는 거다.
신학번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을텐데 벌써 찾아냈나, 진짜 빠르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누가 연락했는지 확인해봤다.
딱히 특이한 점은 없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생이다. 한 때는 한 몸집을 했을 거라 생각되는 얼굴이지만, 입학한 지 보름이나 지났으니 슬슬 신체개조―그 학교는 들어가기만 하면 금방 못 알아보게 변하니까 개조란 표현이 맞을 거다―가 일어날 타이밍이다. 아마 지금쯤은 보통 사람보다 죄우가 살짝 더 긴 정도겠지.
‥‥‥근데 이 자식은 왜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날 보는 거냐?
금방 연결은 끊겼다. 그 기능을 꺼 버린 모양이다. 방금 연결했던 F-터미널이 누군지 확인해봤다―아아, 역시나 이번 '아이들'이구나.
"개체번호 NSHS-B416‥‥‥." 잠깐, 이 번호 어디선가 봤었는데. 어떤 녀석이더라?
‥‥어쨌거나 대답이 없다. 분명 방금 전까지 기동하고 있었을 텐데도.
"굳이 강제로 소환해야겠어?"
이렇게 협박해보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
[죄, 죄송합니다! 정평배 이 양반 때문에‥‥‥.]
얼라.
아아‥‥ 기억났다. 특이종이잖아. 아마 이 아이가 무명과 성격이 똑같아서 주목했던 녀석이였지?
"‥‥저기, 넌 대체 누가 파트너길래 방금 그 기능을 찾은 거야?"
[정평배라고, 평범한 난사고등학교 1학년생이에요.]
평범한 난사고등학교 1년생? 잠깐만, 평범?
"뻥 치지 마. 그 학교에 들어가는 녀석 치고 평범한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었어."
[진짜에요! 아무리 봐도 조비얼 메인테이너로는 보이지 않―]
"거기서 그만. 난 메인테넌스 시스템과는 아무런 인연도 맺고 싶지 않아."
[아차, 그라스 씨는 별종이였죠?]
"여기서 별종 이야기가 왜 튀어나와! 그 이전에, 넌 프릭츠 그 자식이 만든 다른 사람은 본 적도 없잖아!"
[사람 아니잖아요.]
"시꺼, 그러는 넌 자기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냐?"
[‥‥‥.]
그럼, 여기에 부정을 할 수 없어야 내가 만든 자식들이지.
다시 위키시스템을 짜는 작업을 재개한다. 12종 정도의 위키를 보고, 대충 F-터미널에 어울리는 형태가 되도록 조합한 결과를 프로그래밍하면 장땡.
[와, 위키에요?]
"응. 페스토가 의뢰했더라고. 꼭 설치하고 싶다던데? 최근에 어떤 위키에라도 중독된 모양인지 거기 내용을 싹 옮겨달라면서."
[와‥‥‥하고 좋아하고 싶긴 한데, 그러면 쉴 수 있는 시간이 또 줄어들겠네요. 에휴.]
"‥‥굉장히 많이 쓰는 모양이네."
[말도 마세요. 무인형을 제외하면 아마 제가 제일 많이 쓰이는 F-터미널일 거에요.]
"페스티는 왜 빼먹어?"
[아, 페스티 오빠 빼먹었다. 그러면 제가 2번째네요.]
‥‥페스티야 당연하고, 플랜 이 녀석은 얼마나 시달리길래?
[글쎄, 그 정평배란 양반이‥‥]
―너무 길어서 줄인다.
대충 요약하자면 볼 것 없는 폐인이 I.F.사가를 플레이하지 않을 때면 자길 가지고 논다는 거다.―
"이제 그 녀석이 답이 안 나오는 폐인이란 건 알았으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면 안 될까?"
[다른 이야기라면‥‥ 아, 그거 아세요?]
"뭔데?"
[미스티 씨, 환생했더라구요.]
미스티? 아, 그 녀석이라면―
"알아. 쿠루미다스 무겐과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조금 들었었어."
[그럼‥‥ DS 녀석들도 마찬가지란 건요?]
뭐? DS라면, 더스크 솔져스?
"그 웃기지도 않는 놈들이 환생했다고? 아니면 다운폴 쪽?"
[네, 그 웃기지도 않는 놈들이요.]
순간적으로 키를 잘못 눌렀다. 저장까지 해 버리고 프로텍트를 거는 기능이 가동. 해제하는데 5분 정도 걸린다.
아 X됐다, 하면서 소리친다. "걔네들 아직도 맛이 가 있던?!"
[그 특유의 중2병을 말씀하신다면 그대로던데요. 근데 이 녀석들이 진짜 불쌍한 게, 분명 목표를 찾았는데도 그게 목표인 줄 몰라 실패했어요.]
"‥‥대체 뭘 노렸길래?"
[아카식 레코드 연구일지. I.F. 사가도 읽었던 모양인데 왜 그 노트를 보고도 아니라고 단정했었던 걸까요.]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 녀석들 삽질 한 번 제대로 했다.
"하하하하하‥‥ 부, 분명 끝까지 읽은 녀석은 아무도 없었을 거야. 그렇지?"
[죽은 뒤에 한 명이라도 끝까지 읽었다면 분명 땅 짚고 대성통곡하겠죠, 그 녀석들.]
"푸화하하하하하핫‥!"
프로텍트를 풀면서 실컷 웃어제낀다.
"그 녀석들, 옛날엔 그 정도의 삽질까진 안 했었는데, 정말 안 됐네."
[옛날엔 어땠는데요?]
"옛날? 그 녀석들, P.I.F. 시절엔 거의 성공할 뻔 했어."
[네?! ‥‥아니, 능력만 보면 확실히 대단하긴 했죠.]
"그래. 그 학교에 침입했다는 것 만으로도 실력은 뛰어나다는 이야기잖아."
[그 정도가 아니라 잠깐동안 점거까지 했었어요. 리더도 완전히 당했었고.]
리더까지 당했다고? 맙소사, 그러면 현 대차원에서 그 녀석들이 뚫지 못하는 컴퓨터가 네 자릿수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긴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실력 하나는 확실하네. 예전엔 딸랑 그 열셋으로 대전쟁까지 일으켜서 대차원 전체를 먹을 뻔하기까지 했거든."
[‥‥대전쟁이요?]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
"I.F.사가에 나온 명명전쟁 있지? 그게 제 5차 대전쟁이야."
[히바, 그럼 진짜 대단한 거잖아요.]
히바? 잠깐, 그런 말을 여자가 쓰던가?
의아해서 F-터미널을 바라보니, SOUND ONLY라는 화면 저편에서 답한다.
[아, 제가 나비파 컨셉이라서요.]
나비파라니, 무슨 폭력물이라도 찍냐.
[그리고‥ I.F.사가 쪽도 말씀드려요?]
"대략적인 개요만. 페스토가 의외로 사소한 것들을 잘 놓친다는 건 P.I.F.로 증명됐으니까."
[네~ 잠깐, 지금 안 바쁘세요?]
"‥‥방금 네가 태클 걸었던 거 기억 안 나?"
"OK, 이상은 없어. 과정이 조금 다르긴 한데, 어차피 결과만 같으면 장땡이니까."
[장땡? 그런 말은 보통 남자들이 많이 쓰지 않나요?]
"나 원래 프로그래밍 상 남자거든?"
내가 직접 성별을 결정했으니 누가 뭐래도 난 남자다.
[근데 왜 몸은 그딴 여자 꼬맹이죠?]
‥‥‥저 자식이 내 역린을 슬슬 건드리려고 하네.
"그래, 나 유감 많다. 괜히 건드렸다가 삭제당하고 싶냐?"
[아뇨.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CONNECT END]
아, 튀었다.
플랜이 튀고 다시 작업을 재개한 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이미 뼈대는 다 완성한 지 오래고, 이젠 페스토가 부탁한 문서들만 넣어주고 있다. 근데 어째 이 문서들이라고 하는게, 다섯가지 덕이 은근히 많이 느껴지는 문서들 뿐인데‥‥ 어떤 위키에 맛을 들이기라도 했나?
'때르르르르―'
전화? "연결해." 지령과 동시에 모니터 한 편에 얼굴이 나타난다.
잿빛 삐죽머리의 12~13세 정도의 소년이다. 키는 140~145cm 정도로 평균적인 키다―아는 녀석이라 그런 거지 실제로는 얼굴만 비친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염세적인 녀석으로 보일 만큼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엇보다, 눈이 완전히 죽어있다. 저 정도면 만 년 이상을 살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깊고 무겁다.
"퀴넨‥‥ On력 몇 년의 퀴넨이죠?"
[‥‥그 곳에서의 결별 후 1년 차라고 하면 알아들을 거다.]
말투도 진짜 어둡다‥‥ 근데, 저래선 둘 중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있나.
"100만 년은 넘겼나요?"
[100만 년? 아니‥ 그렇다면 잘못 건 모양인데.]
"프릭츠에게 전화 건 거라면, 맨 뒷 번호를 4에서 9로 바꿔서 거시면 될 거에요."
[‥‥고마워. 그런데, 넌 누구지? 프릭츠가 만든 건가?]
"네."
[팟― CONNECT END]
참 무뚝뚝하게도 끊으시는구만.
[여보세요? ‥‥얼라, 그라스?]
"‥‥같은 인물이라는게 전혀 믿기지 않는구만. 여어!"
[뭐야, 명명전쟁 직후의 나라도 만난 거야?]
"전화왔었는데."
똑같은 모습이지만, 분위기가 대판 다르다.
은발에 은빛 눈이란 것도 마찬가지지만, 아까의 그 죽을 상을 한 녀석과는 근본부터 다른 녀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밝다.
생각해봐라, 쌍둥이보다 더 똑같은 꼬마가 염세주의에 찌든 모습은 어디가고 진짜배기 꼬마처럼 밝으니 이만한 괴리감을 느낄 일도 없을 거 아닌가.
"대체 그 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완전히 맛이 간 거야?"
[그 때엔 진짜 장난 아니였었지. 명명(明冥)전쟁이 그렇게 끝난 걸로도 모자라서, 끝난 직후에 배신의 달이 터지지, 간신히 탈출했더니 페스토가 훼방을 놓길래 막느라 또 지치지, 셰이드는 죽었지, 프릭츠는 동면에 들어가지, 명명(銘命)전쟁까지 일어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안 미치고 명명전쟁에서 계속 싸운게 믿기질 않는다니까?]
"케인은?"
[걘 할 일이 있는 이상은 절대 죽지도 미치지도 않아. 트웰브 스타 때는 정신 오염에 당했던 거고, 배신의 달 때는 뭘 하나 제대로 착각했어서 그래.]
"‥뭐, 케인이 헛다리 대마왕인 건 유명하니까."
[그게 이 때부터 얻은 별명이야.]
아, 그건 몰랐는데.
다른 녀석들은‥ 카르세야 레이븐―그 때는 아마 라보스라고 불렸지?―이 있는 이상 절대 죽을 일 없고. 나머지는 대충 알고 있으니 이젠 넘어가자.
"그러고보니, 작년에 결별할 때도 충격 많이 받지 않았어? 지금은 괜찮은가 봐?"
[아니, 멀쩡한 건 아니고‥‥ 지금은 머피의 법칙 제 1항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있어서 뭐든간 전혀 믿음이 안 가.]
머피의 법칙 제 1항‥‥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잘못된다.
"중증이잖아?!"
간만에 재미있는 만담이였다. 이후로도 수십 분 정도 만담을 계속하다가 녀석이 약속시간이라며 가 버렸다.
웃고 떠들면서도 계속 작업한 덕분이였을까, 대충 6만 장 정도 되는 문서들은 어느 사이에 처리가 다 끝나버렸다. 6만 장이나 됐을 텐데, 이렇게 일찍 끝날 줄은.
데이터를 F-터미널에 이식하는 것도 끝났다. 이걸로 오늘의 일은 끝.
이제 뭘 할까 생각해보다가, 간만에 프릭츠가 썼던 연구실에나 들러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이 연구소 바로 옆에 위치한 연구실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섰지만‥‥
[PERMISSION DENIED]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뭘 그리 쳐웃어!"
[얌마, 네가 미쳤다고 거길 왜 들어가!]
"간만에 네 연구소나 탐방가려고 했다, 왜!"
이 말에 프릭츠는 더 크게 웃는다. 음성통화라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게 다행이였지만, 만약 영상이였다면 난 녀석에게 쳐맞을 걸 알면서도 직접 쳐들어갔을 거다. 언제나 재수없는 자식.
조금 뒤, 프릭츠가 간신히 진정하고 말한다.
[거기, 지금 메이가 쓰고 있는 방이야.]
‥‥더 이상 녀석이 괜히 웃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큰일날 뻔 했잖아‥‥ 잠깐."
[왜?]
"너희 둘은 항상 붙어다니는 거 아니였어?"
[미쳤냐?! 내가 머리에 핵폭탄 맞았게?]
‥‥아, 젠장. 귀 아파. 볼륨을 줄이고, 볼멘소리로 빈정거린다.
"네, 건전한 이성관을 가지신 우리의 치트키 거신 프릭츠 닭께선 아무 이상 없으시겠죠?"
[옛날 이야기 계속 할래?! 앙?!]
뭐, 저 녀석도 이젠 전생의 힘 따위는 거의 잃어버린 지 오래인 인간에 불과하다. 머리도 예전의 그 미스틱 테크놀로지를 새로 개발할 수준까진 유지하지 못했고.
덕분에 굉장히 가뿐하다곤 했었지만‥‥
[메이와 같이 있다간, 난 분명 남자가 되어버릴 거라고, 알간? 마법사를 지향하는 이상 절대로 못 넘어가.]
‥‥얼마나 공격당하길래 그런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았다.
무심코 내 양쪽 귀를 만지작거린다. 반 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떠오르려고 할 때마다 귀를 뜯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니 떠올렸다간 또 맛이 갈 거다.
"용케 설득했네."
[그것도 아닌게, 일하는 중에만 떨어지고 돌아오면 내 집에서 또 공격해온다.]
"집? 뭐야, 동거중이야? 야, 그럼 그냥 포기하고 결혼이나 해라. 패천패명 씨도 강력히 밀던데."
[죽어도 싫네요! ‥‥‥‥‥잠깐, 하텐하메이 삼촌도 밀고 있다고? 내 그 변태 아저씨를 그냥 콱! ‥‥뚝]
[CONNECT END]
끊어버렸네. 자, 그럼‥‥
"삼가 고인 마법사 프릭츠의 명복을 빕니다."
비록 페스토의 의뢰를 받고 개발을 해 준다곤 하지만, 난 난사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덕분에 난사고등학교 학생들이 주로 플레이하는 TRPG인 I.F.사가는 플레이할 수 없다.
하는 걸 원하지도 않긴 했지만, 이렇게 할 일이 없을 때는 간혹 그냥 거기에 취직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 심심해. 일단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PSP를 꺼내든다. 퇴근할 때까진 그냥 이걸로 때워야지.
"그래서, 오늘 대체 뭘 한 거냐?"
오늘도 별다른 일 없이 퇴근하고, 후다닥 저녁에 집에서 할 일들을 정리한 뒤에 침대에 누우며 중얼거린 말이다.
거의 1년 전 프릭츠와 만난 뒤로, 난 난사고교와 극난 흥신소라는 곳들의 의뢰를 받아 각종 장비, 설비 등을 연구 ·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이들이 쓰고 있는 극난 터미널, 그리고 이것의 개량판인 F-터미널과 이 F-터미널 각각에 들어가는 인공 인격들이 대표적인 내 작품.
그 후엔 주로 I.F. 사가의 시스템 계통과 시나리오 틀, F-터미널 쪽의 기능 개선 등을 주로 개발하고 있다.
그 말은‥‥ 프릭츠처럼 혼이 담긴 개발같은 걸 한 적은 없단 이야기다.
이렇게 아무 목적도 없이, 난 계속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목적 없는 삶 따위,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잠시동안 이에 대해서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단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 "신경 꺼."
목표는 분명 스스로 정하는 것이지만,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은 그 목표 자체를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우연인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반년 전 이후로 이 삶만 반복해와서인지 목표로 여길 만한 건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한번 그 녀석들과 여행이라도 다녀볼까 생각해봤는데, 역시 무리다.
난 바퀴벌레조차 GG치고 나갈 정도의 생존력 따윈 구경도 못 한다. 나라도 죽고 싶진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눈을 딱 감아버렸다.
[이번엔 이거.]
붉은 드래곤테일 컷의 장신 남자‥ 프릭츠가 자기와 똑같이 생긴 둘 중 하나에게 뭔가를 던진다. 좀 크다.
[‥‥징그럽게 많잖아!]
얼떨결에 받아든 이드. 막 뭔가 무거운 것을 간신히 내려놓았던 참이라 간신히 받아들며 불평한다.
[야, 용 한마리 잡았는데 고작 그 정도로 끝나겄냐?]
방금 프릭츠가 이드에게 던진 것과 똑같은 것을 손질하고 있던 다른 한 명‥ 무명이 그런 이드에게 태클.
"‥‥저기, 모두들 뭐하는 건가요?"
똑같이 생긴 이 셋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나다. 이 질문에 셋은 합창으로 답한다.
3[팔아먹을라고 손질한다, 점마 자슥아!]
모두들 갈색 가죽에 붙어있는 검은 비늘들을 하나하나 뜯고 있어서, 빠르긴 해도 무지 힘들어보인다.
[어이, 내장 계열 처리 끝냈어.]
뒷쪽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막 닫혀가는 푸른 빛의 게이트를 뒤로 하고 다른 셋과 똑같이 생긴 똑같은 남자가 들어오는 중이다.
옷도 목소리도 셋과 똑같았지만, 파란 피에 거의 절어있다. 내장 처리라는 말을 들어볼 때 저 가죽을 뜯은 대상의 내장을 처리하고 온 모양이다.
3[왔다아아아아!]
[레인, 빨리 헤이 걸어줘!]
셋 중 제일 피곤해하던 이드가 외친다. 헤이‥‥ 레인이 수련해왔던 언령식 보조술 중 강속언령 시리즈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윽고 레인은 두 손을 배꼽 위치에 올리더니― 소리친다.
[닥쳐라! 그리고 까라!]
후에 들은 바로는, 그 언령의 정확한 이름은 "强速言令 ~우리 모두 신나게 비늘을 까 보아요~"라고 한다.
맙소사. 지금에서야 알아차린 거지만 레인도 정상은 아니였구나.
여하간, 셋 모두 오오오 비슷한 기합을 지르면서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널려있는 수많은 가죽들에 붇은 비늘들을 떼내기 시작했다.
"‥‥이거, 재미있는데요?"
그런데 난 엄밀히 따지면 생명체도 아닌데 왜 언령에 걸려버린 걸까.
[‥‥어이, 그라스?]
"네?"
[‥‥너, 내가 만든 작품 맞지?]
새 가죽을 꺼내면서 못 믿겠다는 듯 물어본다. 여담이지만 방금 프릭츠가 가죽을 꺼낸 컨테이너엔 아직도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쌓여있다.
자기가 만들었는데도 믿지 못하겠다는 모양이다. 날고 기는 프릭츠도 이런 면모가 있었나‥‥ 좋아, 이 부분 저장해두자.
"네. FIMS-001입니다."
계속 까면서 대답했다.
[‥‥‥성격 설정, 불러.]
"초기 설정입니다. 3시간 뒤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가죽 하나 마무리하고, 새로 하나를 집어들면서 답했다.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거 같은데, 왜 그런 거지?]
언령을 일부러 깨버리고, 고개를 날 향해 돌리면서 묻는다.
"비정상인들을 관찰하기엔 비정상일 때가 제일이기 때문입니다."
[‥‥‥‥‥‥]
모두들, 말 없이 비늘만 계속 깠다.
[‥‥너, 우리와 같이 여행할 생각은 말아라. 아무리 봐도 실전 타입은 아니다.]
이드도 마찬가지로 언령을 깨고 컵라면을 가지러 가며 한 말이다.
2[그러게. 현장에서 뛰기엔 힘들 것 같아.]
프릭츠와 무명의 이구동성.
[그, 러, 니, 까, 넌 연구에 몸 담는 거다. 오케이?]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눈을 떠버렸다. 벌써 아침이다.
또 포스터가 붙어있다. 이번엔 딱히 대단한 포스터는 아니지만‥‥
[이제서야 깨달으셨다면, 지원하세요! 보보보를 쓰러뜨리면 한 달 휴가도 드립니다!]
라는 말이 떡하니 적혀있다.
새벽부터 기분 안 좋은데 이런 포스터까지 봤다.
‥‥‥아니, 포스터가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잖아.
그럼, 이 다음은 뻔한 수순이다.
"내가 머리 밀고 모발대가 될 리 없잖아! 그리고 레인, 이 언령은 반드시 풀어버리겠어! 그러곤 과거로 가서 복수해버릴테니 그리 알아!!!!!!!"
기세 좋은 외침과 하전입자포가, 오늘의 아침을 상큼하게 열어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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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단편.
실질적 단편은 이것이 첫 작품입니다.
1회 하사호 단편문학제에 응모했고 당당히 2등을 수여했습니다만, 애당초 이게 외전이라서(..) 완결되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 감점요인이였죠. 그러고도 2등을 땄다는게 좀 신기하긴 합니다만(..)
뭐 그래도 제 입장에선 꽤 잘 나온 수작.
왜냐면 2번쨰 작품이 제대로 시망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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