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2.

 

 

 "긴날은 뭐 이리 안 와?"

 사과 파이를 한 조각 더 뜯어먹으면서 불평하자, 파누엘 씨도 동의했다.

 "그래요, 긴날 씨가 없으면 이야기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잖아요?"

 "그건 아니지. 어차피 만날 건 만났으니 이제 긴날의 도움은 필요없잖아."

 "짐꾼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저 아가씨,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러면 그 건달은 무시하고 우리끼리 이야기하죠. 일단 그 전설은 뭣 때문에 찾으시나요?"

 가볍게 물어봤을 뿐인데, 대답은 가관이였다.

 "누구 하나 찾으려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뭔가를 찾으려고요."

 "뭐에요 그것들… 아니지, 뭐에요 그것들은?!"

 당연히 나오는 의문이다. 전설을 통해 누군가를 찾다니 누군가의 무덤이라도 찾는 거야 뭐야?! 그리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뭔가라니, 그건 대체 정체가 뭐길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거냐고!?

 다행히 금방 답하긴 했다.

 "요 근래 몇몇 세계에서,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이 연루된 전설들을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전설에 나오는 사람을 찾는다니, 도굴꾼 맞는 거 같은데?

 뭐 그래도, 프릭츠 씨는 알기 쉽게 대답하기라도 했다.

 "그 모든 흐름이 시작되고 끝나는 난기류의 중심을 어떻게 말로 형용해요?"

 이 쪽은 아예 판타지를 찍어주신다. 이게 지금 무슨 창세신화 소설이라도 되나, 왜 그런 걸 찾아?!

 아니 그 이전에, 저건 이 전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잖아!

 "이해해 주세요. 이 놈은 듣는 사람이 이해하게 설명하는 재주가 전혀 없어서……"

 "아니, 대충 우주의 중심을 찾으려 한다는 건 알겠어요."

 프릭츠가 경악한다. 알기 쉽게 입을 쩍 벌려주니, 누가 봐도 경악한다는 걸 알 수 있어서 편하다.

 "……&★※★☆※§○★※◇?"

 우리 마을에서 쓰는 언어도 공용어도 아닌 언어로 중얼거린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순 없다.

 그렇게 얼이 빠진 채 잠깐 중얼거리다가, 간신히 정신 차리고 물어본다.

 "……어떻게 안 거죠?"

 "………유추 못 하는게 바보 아니에요?"

 "아니, 유추하는 쪽이 대단한 겁니다. 우주를 이루는 근본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해본 적이 있단 이야기니까요."

 "그런 계열을 다룬 소설을 하나 읽은 적이 있거든요. 저자가 아마 후아 란졔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처음 듣는 작가 이름인 모양이다. 꽤 유명한 작가인 줄 알았더니 아닌가보다.

 "뭐, 어쨌건 그것과는 별 관계가 없는 전설이에요. 안됐네요."

 "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리란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러면 왜 이런 전설을 찾는―

 "하지만, 프릭츠가 찾는 사람이 그것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래서 이런 전설들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정확히는 전설에 특정 문구가 들어있는지를 찾지만."

 프릭츠가 덧붙인다.

 "특정 문구?"

 

 "붉은 검사."

 

 

 "붉은 검사가 말씀하셨다

 저 이름없는 작은 숲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너무도 강렬한 빛에 눈이 멀 수 있으니"

 무심코 1연을 읊어버렸다.

 "……Bingo."

 프릭츠 씨의 눈이 돌연 진지해진다.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러죠."

 "뭐에요, 뭐에요? 붉은 검사란 말이 나온대요?"

 "잠자코 있어."

 대충 정리된 뒤, 다시 말했다.

 "설령 오게 되거든

 절대로 쇠붙이를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셨다

 피조차도 보이지 않게 될 테니 

 

 절대로 땅에서 떨어지지 말고

 절대로 나무에 붙지도 말며

 절대 물에 발을 담그지 말라 하셨다"

 다 들은 뒤, 프릭츠 씨는 뭔가 석연치 않은듯 묻는다.

 "……그게 끝?"

 "의미불명의 낙서는 있었지만, 글씨체도 엉망이고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그냥 장난이라 생각하고 무시했어요."

 "혹시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거 있습니까?"

 "없어요."

 한숨을 팍 쉰다. 아무래도 그게 꽤나 중요한 모양이다.

 "…제기랄, 이렇게 되면 진짜인지 아닌지 분간하기가 좀 힘들어지는데."

 "진짜?"

 "네. 지금까지 봤던 것들은 모두 그런 자필으로 '에라, 내가 직접 쓴다!'로 시작했습니다 ."


 ……에라이, 그냥 내가 직접 쓴다!


 있다. 분명 기억난다. 굉장히 특이해서 인상 깊었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프릭츠 씨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을 북쪽의 숲으로 안내해줘요. 당장."

 "네?" 

 이미 난 먹을 만큼 먹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도 상관없긴 했지만, 워낙 뜬금없어서 어벙하게 묻는 이상의 반응이 불가능했다. 그러는 사이 프릭츠는 내 어깨를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고, 우리 이야기를 멍하니 들으면서도 스테이크를 계속 뜯고 있던 파누엘도 일으켜 세웠다. 여담이지만, 스테이크는 거의 다 먹었다.

 "너도 일어나!"

 "에~~~?! 잠깐만요, 아직 음식을 반도 먹지 못한 숙녀에게 일어나도록 강요하는 건 매너가 아니라고요!"

 "남자 몸에서 성전환도 안 한 주제에 그런 말 할 자격 따윈 없어, 닥치고 따라와!"

 뭐?

 남자?





 그 13.




 "지, 진짜로 남자에요?"

 "남자입니다. 저 흉악한 물건은 인공 슬라임으로 만든 거고, 얼굴은 가끔가다 중성적 외모를 가진 녀석이 있으니 그렇다치지만, 성격이 왜 저런지는 저도 몰라요."

 "……."

 프릭츠 씨는 그래도 나아보이는데, 저 여… 아니, 뭐라 불러야 하나. 여하간 파누엘이라는 저 사람은 같이 다니기엔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을 것 같다.

 그나저나, 우리 가족들은 날 그런 식으로 보내버릴 줄이야. 끌려가는 걸 보고 막지는 못할 망정

 '보수는 톡톡히 받아내~'

 '긴날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런 게 돈 잘 번다면서? 힘 내!'

 ……이런 식으로 배신을 했다. 벌써 돈 맛을 알아버리다니, 우리 가족도 완전히 타락하고 말았어…….

 "거기서 무슨 이야기들을 하시는 거에요? 빨리 가요!"

 제일 늦게, 그것도 억지로 왔던 건 잊어먹었는지 앞쪽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를 독촉하고 있다.

 "……빨리 가죠. 저 망할 놈이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면 나라고 해도 짜증나니까요."

 발걸음을 빨리 하는 프릭츠 씨를 간신히 따라잡으면서 물었다.

 "평소에도 짜증을 부리시는 거 같던데."

 "부리죠. 하지만 옛날에 동료들에게 심심하면 짜증을 냈던 것보다는 훨씬 나아진 겁니다."

 "그 때는 어떤 식으로 짜증을 냈길래?"

 "제 간판 공격기를 화력을 줄이고 운동량만 놔둬서 날려버렸죠. 다들 한 실력해서 손쉽게 버텼습니다만."

 "……."



그 14.


 "그나저나, 여관에서 창으로 보기만 해도 넓었는데 실제로 숲을 걸어보니까 더 넓네요?"

 "아직도 지도 보고 실제 넓이 계산하는데 서툰 모양이네."

 "지도란 걸 알게 된 지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고요, 그런 걸 바라지 마세요!"

 "처음 만나자마자 설명했잖아! 제발 이런 것도 좀 기억해달라고!"

 "왜요? 그런 건 프릭츠가 대신 하면 되는데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없잖아요."

 어떤 고생을 해왔는지 아주 살짝이지만 보였다.

 뒷목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날뛰는 프릭츠 씨는 무시한 채, 파누엘 씨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재차 감탄한다.

 "도시도 크고, 붙어있는 숲도 넓고, 상당히 좋은 곳이네! 이런 데서 살다니 참 부러워요."

 "에이, 그렇게 큰 도시도 아니에요. 왕국 중심부에는 여기보다 훨씬 커다란 도시들도 많은걸요."

 "아니, 여기도 충분히 커다란 겁니다. 수도급이야 당연 무리겠지만, 이 정도면 대도시라 불리는 곳들보다 살짝 작은 수준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5년동안 80%라는 건 좀 길지 않아요?"

 "80%? 아, 지금이야 한 지점을 파는데 길어야 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예전엔 이틀에서 사흘 걸렸거든요. 아침에만 작업하자니 너무 힘들었어요."

 "……처음부터 그런 속도가 아니였다면, 한 번에 이 정도만 파서 80%가 대체 어떻게 나오는 거죠?"

 오늘 아침에 놔뒀던 사각틀 앞이다. 한번 파냈다가 다시 묻은 탓인지…… 아니, 한 선을 경계로 내가 지금까지 파왔던 땅은 약간의 갈색을, 아직 파지 않은 곳은 황토색 빛을 띄고 있다. 파낸 지 일주일 이상 지난 곳부터는 점차 그 빛이 옅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구별할 정도이긴 하다.

 "하다가 정신 차리니까 이렇게 됐더라구요."

 "……그보다 더 궁금한 건, 어떻게 질리지도 않고 5년이나 할 수 있었냐는 겁니다."

 어떻게 버텨왔나? 답은 간단했다.

 "있다고 확신했으니까요."

 자신있게 말한 것도 아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말했다.

 이런 대답을 듣고, 프릭츠 씨의 눈이 빛났다. 무슨 소설같은 것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표현이란 건 알지만, 지금 내가 본 건 그런 흔한 묘사가 아니라― 진짜로 붉은 광채가 살짝 비쳤다. 조금 섬뜩하긴 했지만, 그리 날카로운 빛은 아니였던 걸 봐선 단순한 호기심에 그런 눈을 비쳤던 것 같다.

 "확신하는 증거가 따로 있는 것 같군요."

 "네…… 그리고, 앞으로는 그냥 반말하세요. 당신같이 엄청난 시간을 살아오신 분에게 존댓말을 듣는게 상당히 어색하네요."

 "어라? 눈치챈 거야?"

 "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지금 여기서 제가 확신한 단서를 말씀드릴까요?"

 "네, 들려주세…"

 "아니, 됐어."

 파누엘 씨는 꽤나 궁금해했던 모양이지만, 의외로 프릭츠 씨가 제지했다.

 "대체 왜요?! 궁금하니까 이 사람은 무시하고 그냥 말해주세요!"

 "…어차피 나중에 들어도 되잖아."

 그리고, 프릭츠 씨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 근처의 지리를 이야기할까 물어봤지만 필요없다고 해서 가만히 기다렸다. 조금 뒤, 한숨을 살짝 쉬더니 말한다.

 "……예상대로네."

 "네?"

 "숲의 중심부로 들어가자. 여관 창문에서 보니까 거기만 침엽수던데."

 "아…… 네. 안내는 마찬가지로 필요없으시죠?"

 여기에 오는 것도 내 안내 없이 직접 찾아온 것이였다. 지도에 내가 표기한 부분을 보고선 파누엘 씨에게 그 방향을 가리키니까 길을 헷갈리는 일도 없이 정확히 도착했는데, 굳이 내 안내가 필요할 것 같진 않아 물었다.

 내 생각이 맞았는지, 프릭츠 씨는 살짝 이 쪽을 바라봤다가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거다.

 "빨리 와, 파누엘."

 "에? 잠깐만요, 이번엔 프릭츠가 앞장서는 거에요?"

 "……파누엘, 너한텐 좀 껄끄러울텐데?"

 "아."

 프릭츠 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파누엘이 프릭츠에게 딱 붙었다. 갑자기 웬 남사스러운 장면인가 했는데, 이 뒤에 파누엘이 한 말이 더 가관이다.

 "떼놓으면 미워할 거에요."

 "야, 이 빌어먹을 놈아! 그런 짓은 제발 하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냐!"

 그러면서도 붙어서 잘만 간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거리가 상당히 벌어졌을 즈음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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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쓰다가 그 15에 해당하는 분량을 날려먹었습니다(그 14의 뒷부분에 자리잡아야 했습니다만).

그래서 열받아 급하게 그 14로 마무리하고 올렸었죠.


이제부터는 학교서 연재하던 원본과 관련된 이야기는 때려치도록 하겠습니다.

별 의미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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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5화와 해설을.

Posted by 쿠루미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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