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4.

 

 

 

      "여기까지."

      붉은 머리의 남자는 자기 검을 내려놓고 손을 털었다.

      "좋아, 이 정도면 일단은 합격. 저녁 못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뭐가 그리 신나는지, 그 남자는 이 쪽을 보면서 싱글벙글 웃고 있다.

      그런 남자의 등 뒤에 맥없이 쓰러져있는 커다란 소 한 마리.

      조금 전까지 우리가 상대하고 있던, 앞뒤 길이만 15m는 되는 상당히 커다란 소다. 어떤 신화적 존재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고작 이런 소 한마리 처리하는데 그리 고생해서야 쓰나. 아직 멀긴 멀었어!"

      그리 웃어대더니만 돌연 화를 내면서, 저 소에게 결정타를 날렸던 그 흉악한 발을 휘두른다.

      '쿡!' "우욱―!"

      대번에 뒤로 20m 날아간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날아가는 도중이였지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정신없는 내 배 상태를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였다.

 

 

 

      어디, 검은 봉지 없습니까?!?!?!?!

      

 

                                                           ―지금은 깨지고 없는 꿈의 단편, 그 중 하나

 

 

      "우욱!"

      "왜 그래요? 입덧이라도 하는 건가요?"

 ……잘못 들은 건 아닌 것 같다. 분명 내 이마에서 빠직 소리가 제대로 났다.

      "난 남자야, 되도 않는 게이 흉내에 미친 얼간아!"

 아차, 또 신경질을 내 버렸다.

 다행히도, 파누엘은 이번에는 그 머리를 제대로 써 줬다.

      "……또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죠?"

      "……그래."

 이 빌어먹을 기억은, 매번 떠오를 때마다 이리 속이 뒤집힌다.

 아, 저 기억에 나오는 저 남자가 혐오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다. 단순히…… 단순히……

 제기랄, 아직도 저 때 고생했던게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PTSD,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트라우마라고 알고 있는 그거다. 떠올리기만 해도 그 당시의 고통이 기억나서 이런 발작 비슷한 것을 일으키는 거다. 이번 경우는 복부의 통증이다.

 ………저 당시엔 아마 내장 일부가 함몰되서 약 이틀 정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지.

      "좋은 징조라고 봐도 될까요?"

      "아니, 그냥 그 당시의 '수련'에 대한 기억일 뿐이야. 정작 찾아야 하는 그 기억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면서, 이번엔 홍차를 마시는 파누엘. 이 녀석은 그리 기쁘다고 할 순 없는 일엔 평소 마시던 정체 불명의 허브티 대신에 홍차를 마신다. 본인 말로는 착잡한 기분을 진정시킬 때 좋은 차분한 향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나저나, 그 긴날이라고 했던 댄디한 신사 분은 왜 그리 호언장담하셨던 걸까요?"

      "뭐긴 뭐야. 그 전설을 아는 사람이 자기 친구라서 그렇지."

      "기억이 잠깐 떠올랐던 것도 그렇고, 오늘 왠지 예감이 좋네요."

 예감이라……. 파누엘의 그건 지금까지 그게 맞았던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마을 외곽 부분에 있는 한 고급 식당의 테라스에서, 우리가 조금 전 이 세계로 건너올 때 통과했던 게이트를 보면서 멍하니 와인잔을 들어올렸다. 흰색 깔대기처럼 생긴, 아주 커다랗고 높은 건물이다.

      "옛날엔 저런 건물을 쓸 일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지."

      "왜요? 아니, 잠깐만요. 세계 이동을 하려면 저런 게이트를 통해야 하는 거 아니였어요?"

 그대로 저 흰색 탑―그렇게 부르지 못 할 이유는 없잖아―을 응시하면서 와인잔을 들이키다가, 슬슬 파누엘이 들고 있던 와인잔을 높이 치켜들 때 말했다.

      "스승님에게 다른 방법을 배워서, 그 방식으로 이동했어. 나중에 어느 정도로 내가 가진 기술을 발전시킨 뒤엔 내 전용 차원이동용 우주선을 하나 개발해서 그걸로 이동했고."

      "오로지 기술만으로요? 마법 없이?"

      "그래. 스승님이 철저하게 마법 사이드였던 걸 생각하면 좀 아이러니지?"

 슬쩍 여러 주머니를 다듬어봤다. 내 USAS-12는 잘만 잠들어있다. 탄환은 내 마력으로 대신하면 되니까 보통 들고 다니지 않는 편이고, 이 정도만 들고 다녀도 총기가 필요한 상황엔 잘만 쓰인다. 중거리? 산탄 대신 슬러그탄을 쓰면 된다. 원거리? 내겐 비장의 그 것이 있는데 왜 원거리까지 걱정하…… 아차, 이런 건 까발리는 게 아니지. 아무리 생각이라도.

      "그건 그렇네요. 그렇다면 프릭츠 당신은 어느 사이드에 속하죠?"

      "어느 사이드냐고? ……이미 난 그런 이야기를 할 단계는 지난 거 같은데."

 지금까지 하도 많이 돌아다니며 기술들을 모으다 보니, 이젠 과학이건 마법이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됐다. 그냥 좋아보이면 쓰거나 발전시키고, 안 좋아보이면 개량할 방법을 찾아보거나 버리고.

      "그럼, 저는 어느 쪽이라 보여요?"

      "……."

 현실은 만화가 아니다. 가끔 현실에서도 마시던 걸 뿜는 경우도 있는 것 같긴 한데, 최소한 내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간신히 삼키는 데는 성공했고,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굳이 상상하려 하지 않으면서 파누엘을 봤다. 그 구역질 나오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

      "………넌 그냥 M 계열이라고 본다."

      "M?! 제가 변태라고요?!"

 이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M 말고, 차원 분류의 M. 괴물들만 날뛰는 세계."

      "더 실례잖아요!"

      "……아니, 넌 진짜 괴물이잖아."

 지금까지의 내경험에 비춰봐도, 이 놈은 진짜 괴물이다. 실제로 하는 짓도 그렇고, 이 녀석이 다루는 '그 힘'도 그렇고.

      "그런 신을 섬기면서 선교사 짓을 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인외라고."

      "그럼 이 이야기는 그만두도록 하죠."

 또 지멋대로 이야기를 끊는다.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한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파누엘은 저 탑을 응시하더니, 내게 묻는다.

      "평행 세계……라는 게, 아직 실감이 잘 안 나네요. 고작 길 가다 동전을 보고 줍냐 안 줍냐 하는 수준의 한 두 사건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의 차이인데 이렇게 심하게 갈린다니 말이에요."

      "한 두 사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매 순간마다 적어도 60억 이상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한 순간에 60억? 어째서죠?" 

      "어째서긴 뭐가 어째서야. 지구상의 인류 숫자만 해도 최소한 그 반절 이상은 된다고. 거기다가 자연의 변수들까지 생각해보면 이 수는 한참 작게 잡은 수치야."

      "아하…… 그렇게 많은 차이가 지금까지 누적됐다면 설명이 되긴 되네요."

      "그래. 그런 차이가 쌓이고 쌓여서 결국은 이렇게 다양한 세계들로 나뉘게 된 거지. 그게 평행세계라는 개념이고."

 그런데, 이 녀석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차원 방랑자 주제에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거야?

      "에이, 생각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없던 일로 하죠. 긴날 씨는 언제 오실까요?"

 결국은 저렇게 흐른다. 매번 마지막엔 이리 나오니 할 말이 없다.

      "긴날 씨, 금방 다녀오겠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그러고보니, 확실히 긴날이란 녀석이 그리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조금 늦긴 늦는데…….

 

 

 

  그 5.

 

 

       '우지끈―'

 악, 제기랄. 또 부러졌다. 그래도 꽤나 오래 버티긴 했지만.

 재빨리 삽을 거꾸로 잡고, 삽자루를 돌려 날과 분리한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로 부러진 자루를 손잡이와 분리한 뒤에 등에 매고 있던 나무 막대를 꺼낸다. 끝부분에 나사처럼 패인 홈을 삽과 연결시켜 돌리고, 손잡이 부분도 똑같이 연결시킨다. 좋아, 이걸로 수리 완료.

 부러진 삽자루는 그냥 던져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나중에 올라갈 떄 처리하기로 했다. 대략 30m 정도는 판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앞으로 1시간만 더 하면 금방 끝나겄네. 올라갈 때야 그냥 각력 좀 강화해서 벽 타고 올라가면 되니까, 딱히 별 문제는 없다.

 전설에 따라, 이 곳엔 절대 쇠붙이를 가지고 올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나무만을 이용한 삽을 쓰고 있는데…… 그래선지 툭하면 이런 식으로 부러진다. 그 덕분에 이제는 항시 이런 여유분까지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 자, 이제 다시 삽질로 돌아가자―

      "어이~!"

 갑자기, 구덩이 위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린다. 이 목소리…… 젠장. 또 저 놈이야?

      "어이~! 파다가 결국 과로로 죽었냐?"

      "안 죽었어, 이 빌어먹을 놈아!"

      "아, 살아있다."

 위를 바라봤지만, 역시 누가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누가 암매장이라도 시도한다면 끝장나겠지. 암매장을 시도했던 놈이.

      "여어, 오늘도 삽질하시나?"

 전혀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이 굴을 울린다. 혹시고 뭐고, 한숨을 쉬면서 위를 바라본다. 역시나다. 평소랑 마찬가지로 바깥 사람들 차림을 따라한 채 잘난 척하는 건달이다.

      "그래서? 도울라고 왔냐? 도움도 안 되니까 빨리 가라."

 유스리스 긴날이라는 건달이다. 마을에 들어온 지 올해로 5년차인 놈으로, 필요도 없는데 괜사리 바깥 세계의 사람들이 입는 것이나 흉내내고 예의와 공경은 찾아볼 수 없는데다 부모라는 단어에 민금하게 반응하는 걸로 보면 속 꽤나 썩이던 문제아였던 모양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지만. 여하간 그리 막돼먹은 놈이라서, 처음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찾아와서 깽판을 부리곤 했었다.

 물론 난 그걸 끝까지 참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 아니다. 특히나 생매장을 시도할 땐.

      "아니, 알려줄 게 하나 있어서 왔어!"

      "헛소리면 또 삽에 맞는다."

      "그게 아니라! 토막이 되는 건 4년 전 한 번으로 족해!"

 토막? 그걸 토막이라고 부르나?

      "사람 머리만 식물처럼 심어진 걸 토막이라고 부르나보지, 바깥세계에선?"

      "……뭐, 이 농담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안 들릴 거라 생각했나 본데 다 들린다.―) 어쨌거나! 다시 머리만 남은 채 묻히고 싶진 않다고!"

 그 당시는 삽질을 시작한 지 반 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 사이에 근력이 붙었는지 저 놈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매장하려고 했던 대가로 머리만을 땅 위에 내놓고 심은 적이 있는데, 그게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다. 그 당시 내가 약 40m 정도를 파고 있었을 때 벌어진 일이였으니,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내 일을 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일도 안 돕는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럼 빨리 용건이나 말해."

      "아… 실은, 바깥 사람이 찾아와서."

      "바깥 사람?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아니, 나에게 바깥 사람이 왔다니까!"

 ……'나'에게라. 얼굴이 찌푸려진다.

      "주어는 똑바로 말해."

      "그러니까, 나 폴스 라하르에게 바깥 사람 둘이 볼 일이 있다고!"

      "뭐야, 진짜 나야? 무슨 일이래?"

 말은 이렇게 했지만, 대충 무슨 이유일지는 상상이 간다― 아니, 있을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

      "전설 때문에! 원전도 한 달 전에 취객이 불 지르면서 소실된 마당에 그걸 아는 사람은 너 하나밖에 없잖아!" 

 ……전 촌장님은 1년 전에 돌아가셨지.

 내 이름도 지어주신 분이고, 신통한 점성술사이기도 하셔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좋아하셨던 분이였는데.

 잠시 침울해졌다가, 고개를 흔들어서 그 생각을 떨쳤다. 그 바깥 사람이란 자들이, 대체 이 전설엔 왜 관심을 가지는 걸까. 그 점에 흥미가 동한다.

 흠, 어떻게 할까…… 결정했다.

      "여기로 오라 하던가, 아니면 점심까지 기다리라고 해. 난 오늘 여기서만 작업할 거니까, 온가도 하면 이 쪽으로."

      "알았어! 그럼, 오늘은 삽질 잘 되길 빌게!"

 그 목소리와 함께, 긴날의 모습이 위의 구멍에서 사라진다.

 확실히 예전보단 사람이 나아지긴 한 건가…… 새삼스럽게 느끼는구만.

 가족에게 들은 바로는, 그 사건 이후 실제로 사람이 괜찮아졌다고 한다. 이제는 마을 내에선 좀 험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녀석으로 자리잡고 있으니까 맞는 말일지도. 그러고보니 옛날엔 뒷골목의 좁고 으슥한 비에서 살고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꽤 커다란 집에서 살고 있지? 그 가이드란 일도 상당히 잘 되는 모양이고.

 생각보다 그 토막 재배―경험한 녀석이 직접 부른 별명이니 붙여도 될 거다―의 효과가 좋은 모양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계속 땅을 파내려갔다.

 

 

  그 6.

 

 

      "점심까지 기다리던가, 여기로 오던가 선택하라고?"

 프릭츠의 어이가 산으로 날아갔다…… 파누엘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이야."

 나직한 탄성만을 뱉은 채, 프릭츠는 고개를 떨군다.

 ……그러다가, 돌연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긴날이고 파누엘이고 깜짝 놀라는 건 신경쓰지도 않고 한동안 거의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간신히 진정될 무렵에 한 마디 한다.

      "하하하하하하하…… 이런 녀석은 오랜만이네."

 그러다가, 주변을 보고 놀란 프릭츠.

      "아니, 둘은 갑자기 왜 그래?"

      "……방금 그 웃음소리를 듣고도 멀쩡한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요."

 긴날의 말에, 프릭츠는 이번엔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하하하! 무슨 소릴, 옛날에 같이 다녔던 동료들은 이런 거 듣고도 눈살 찌푸리는 정도로 끝났다고."

      '대체 그 옛날 동료라는 건 어떤 사람들이야?'

 똑같은 생각을 하던 둘, 금방 이 생각은 잊어버리고 묻는다.

      "어쨌거나, 이제 어쩔 거에요?"

      "어쩌다니?"

      "저렇게 나오는데, 건방지지 않아요?"

      "파누엘, 저건 건방진 게 아니야.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졌다는 증거라고."

 언뜻 수긍하지는 못하는 파누엘을 보고, 프릭츠는 이해한다는 듯이 파누엘의 머리를 두드린다.

      "이해 못 해도 어쩔 수 없지. 아직 어리니까…"

      '푹―'

 ……분명 들리는 소리는 푹이였지만 보는 사람들에겐 '깡―!'이였을 것이다. 긴날은 문제의 그 곳을 부여잡고, 지나가다가 그걸 본 남자들도 얼굴이 심각하게 망가졌다.

 다만, 본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파누엘."

      "왜요?"

      "내가 설마 남성이라고 생각한 거야?"

      "…………남성이건 여성이건 급소 아니에요?"

 당황해하는 파누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긴날. 그런 둘을 번갈아 보더니만, 프릭츠는 결국 한숨을 쉰다.

      "이해 못 한 사람은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되고, 이해한 사람은 그냥 그렇구나 하면 돼."

      "……진짜에요?"

 파누엘의 말을 무시하고 여관으로 들어갔지만, 정작 파누엘은 너무 놀란 나머지 등짝을 차는 걸 잊어버렸다.

      "가, 같이 가요!"

 둘이 들어가는 걸 멍하니 보던 긴날도, 따라서 들어간다.

 

 

 

 

 그 7.

 

 

 

      "기다린다고요?"

      "그래."

      "아니, 대체 왜요?!"

 파누엘은 프릭츠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졌다.

      "일종의 경의야."

      "경의라니?! 지금 우리가 그렇게 시간을 아낄 때인가요!?"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래? 빨리 찾을 필요 없다고 말했던 건 너잖아? 처음 계약 조건도 그랬고."

 프릭츠의 지적에 금방 입을 다물긴 했지만, 곧 뭐라고 다시 따지려는 파누엘. 하지만 그 이전에 프릭츠가 선수쳤다.

      "뭐라 하고 싶으면 먼저 맹점이 뭔지나 알아내. 무턱대고 빨리 가자가 독촉하는 건 내가 안 받아."

 할 말을 완벽히 잃은 파누엘. 뭐라고 따지고야 싶었지만, 최소한 프릭츠의 결정에 논리적 모순같은 건 없었다. 이렇게 확고하다면 파고들 틈도 없다. 그래도 일단 뭔가 건지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경의라는 건 대체 왜 생기는 거죠?"

      "어? 뭐야, 이해 못 했어?"

 고작 이 정도의 단서만으로 이해하는 프릭츠가 이상한 것이다. 파누엘의 목 언저리까지 이 말이 올라왔지만, 간신히 들어가고는 고개만 끄덕인다.

      "긴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나라는 녀석은 지금 여기서도 보이는 저 숲에서 5년동안 조사하고 있다고 했지."

 프릭츠는 열려있는 창문 정면으로 보이는 숲을 응시한다.

      "네."

      "5년동안, 계속. 여기서 뭔가 느껴지는 점 없어?"

      "……어라?"

 그 머리가 어디 가지는 않는지, 파누엘은 프릭츠가 이리 핵심을 집어주자 금방 깨닫는다.

      "전설을 통해서 저 숲에 뭔가가 있는지 알아내긴 했는데, 그 이상의 단서는 찾지 못했다는 거지."

      "……그러면, 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삽질만 했다는 건가요?"

      "그냥 삽질이면 이리 경의를 표할 일도 없지."

 프릭츠의 말에 다시금 놀라는 파누엘…… 하지만, 긴날이 출발하기 직전 했던 말을 떠올린 파누엘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분명, 긴날 씨가 출발할 때 '그 녀석은 항상 그 근처에서 삽질했었지?'라고 중얼거렸죠?"

      "그래…… 그냥 삽질이 아냐. 진짜 삽질이다."

      "…………경의받을 만 하네요."

 5년이라는 시간은, 믿음을 고수하면서 계속 찾아다니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다. 그것만이여도 대단한 것인데, 긴날의 말을 토대로 생각해봤을 때 저 숲을 조사하는 방법은 직접 삽을 들어 숲 전체를 파내는 것. 아마 한 부분을 파고 메꾸는 식일 것이고, 그런 방법으로 조사하기엔 이 숲은 너무도 크다. 무엇보다, 이런 단순한 반복 작업은 쉽게 질린다. 그런데도 5년씩이나 버텨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하고 있다…… 바로 그 점이, 프릭츠가 경의를 표하는 이유였다.

      "그러니까, 오늘치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자고. 아침에만 작업하는 것 같으니까."

      "네? 그건 어떻게 아시는 거죠?"

      "당장 여기로 튀어오던가, 아니면 점심 때까지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었지?"

      "그렇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판단할 순 없잖아요? 점심에 잠깐 쉬러 왔다가 다시 갈 수도 있는 노릇이고."

      "맞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지만 그 나라는 사람이 하고 있는 작업을 생각해봐."

 무슨 말인지는 이해한 파누엘. 하지만 납득한 것은 아닌지 다시 따진다.

      "인내력이 유난히 뛰어나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요?"

      "그 녀석이 인간이고, 나이가 30세 이상이였으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까 긴날의 태도를 볼 때 긴날보다 나이가 많진 않은 것 같고 긴날은 약 26세 정도 됐어. 그런 어린 녀석이 그만한 참을성을 가지려면 뭔가 특별한 사건을 겪거나 해야 하는데, 그런 기미는 보이지도 않고."

 아델 마을을 비롯한 케트니아 대륙에선, 프릭츠의 고향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경로 사상은 가지고 있다. 파누엘은 경로 사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5년을 유지했다면, 적어도 하루 일과를 여기에만 매진하고 있는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그걸 아까 그 말과 연관짓는다면, 오전에만 작업을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지."

      "흐음…… 추리라는 걸 하는데는 문화같은 것도 알아둬야 되는 거군요."

      "그래. 그 점에서, 5년씩이나 조사했는데도 안 나온다는 건 전설을 뭔가 잘못 해석했다는 이야기야. 그걸 작업하는 도중에 듣게 된다면 기분이 배로 나빠지지 않겠어?"

 '저런 것까지 생각해뒀나?!' 파누엘은 대체 프릭츠가 어디까지 생각해뒀는지 알 수 없었다. 갈팡질팡하는 파누엘을 보고, 살짝 웃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프릭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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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4.를 쓸 때는 푸[삐] 님의 평가 덕을 좀 받았습니다. 여기는 학교서 작업하던 것에다가 새로 추가한 내용인데, 처음엔 설명조로 되어있었는데, 저 분이 살짝 까시는 걸 보고는 방향을 바꿔서 회화체로 바꾼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더 좋아서 만족.

저 회화체는 1부나 2부 등에서 케인이 나오면 써먹어야 제맛이지요 ㄲㄲ 

이번 편 내의 떡밥은 여기서 본격적으로 나옵니다만, 정작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복선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 끄적거리긴 해보겠습니다.

_M#]




이 다음에는 4화와 막장해설을.

Posted by 쿠루미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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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I.F.사가라는 주인장 뇌 속에서 이리저리 자유영 접영 배영 횡영 다 하고 다니는 세계관을 다루는 블로그입니다. 룰루랄라. by 쿠루미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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